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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원작 ‘청설’ vs 한국판 ‘청설’ – 두 감성의 속삭임

by 누리담터 2025. 4. 9.

  한국에서 2010년 개봉한 대만 영화 *청설(聽說)*은 조용히 관객의 마음을 두드리며 대만 청춘 로맨스 영화의 수작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리고 2024년, 이 감성이 한국에서 다시 태어났습니다. 같은 제목, 같은 설정이지만 전혀 다른 뉘앙스로 완성된 두 작품. 과연 이들은 얼마나 닮았고, 또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이번 포스트에서는 대만 원작과 한국판 영화를 비교해보겠습니다.


스토리라인과 설정 – 같은 뼈대, 다른 살결

  대만 원작 청설은 여주인공 ‘양양’과 청년 '텐커'’의 조용한 사랑을 그린 이야기입니다. 말 대신 눈빛과 손짓으로 소통하는 두 사람의 관계는 세상의 소음 속에서 더욱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이야기는 단순하지만 그 단순함 속에 숨은 진심과 배려가 영화 전반을 감싸며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반면 한국판 청설은 원작의 핵심 구조는 유지하되, 인물 간 갈등 구조를 조금 더 드러냅니다. 언니 ‘여름’과 동생 ‘가을’이라는 캐릭터는 대만판보다 감정 표현이 훨씬 직설적이며, 서사도 보다 드라마틱하게 전개됩니다. 특히 가족, 진로, 경쟁 등 사회적 요소를 자연스럽게 녹여냄으로써 한국 현실에 맞게 각색한 점이 인상적입니다. 그리고 여자주인공이 대만판에서는 동생(양양)으로, 한국판에서는 언니(여름)로 바뀌었습니다.


캐릭터 해석과 연기 – 말보다 눈빛, 혹은 눈빛보다 말

  대만판의 귀여운 매력은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에서 비롯됩니다. '텐커'역의 펑위옌과 '양양'역을 맡은 천이한은 인위적이지 않은 일상 연기로 청춘의 설렘과 망설임을 고스란히 전달합니다. 특히 청각장애인 역할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섬세하고 진정성 있는 접근이 돋보였습니다. 수화 장면 하나하나에 진심이 실려 있어 관객도 어느새 그 언어에 익숙해집니다.

 한국판에서는 언니 여름역을 연기한 배우 노윤서가 내면의 감정을 수화와 표정, 눈빛으로 섬세하게 표현해냈습니다. 다만 캐릭터 간 긴장감이 조금 더 강조되다 보니, 전체적인 분위기는 원작보다 다소 무겁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또 원작의 ‘조용한 흐름’이 강조되었던 남자주인공 '텐커'와 달리, 한국판 남자주인공은 보다 적극적이고 말이 많은 스타일로 재해석되었습니다. 이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한국적 리듬에 잘 맞는 변주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감성의 톤과 연출 – 대만의 잔잔함 vs 한국의 섬세함

  청설 대만판의 가장 큰 매력은 ‘소리의 부재’를 감성적으로 활용한 연출입니다. 배경음악조차 조심스럽게 쓰이며, 침묵과 여백이 주는 울림이 큰 편입니다. 조용한 골목, 수영장 물결, 햇살이 드리운 거리 등 풍경 하나하나가 주인공들의 감정을 대변합니다. 말보다 더 큰 위로가 되는 연출이죠.

  한국판은 영상미에서 섬세한 미감을 추구하면서도 음악과 대사, 몽타주 등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원작보다 색감이 따뜻하고 부드러우며, 감정선도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특히 인물들의 감정 변화에 따라 카메라 움직임이 동적으로 바뀌고, 배경음악도 보다 감정 몰입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쓰입니다. 그래서인지 관객 입장에서는 ‘조금 더 친절한 영화’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소통의 방식 – 수화와 감정, 그리고 문화의 차이

  대만 원작에서 수화는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을 넘어 정서적 연결고리 역할을 합니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수화는 사랑을 나누는 언어가 되고, 주인공 간 거리를 좁히는 도구가 됩니다. 관객 역시 자막을 넘어서 수화의 감정을 느끼게 되죠. 문화적으로도 대만의 느긋한 일상과 따뜻한 공동체 정서가 전반적으로 배어 있습니다.

  반면 한국판에서는 수화보다는 ‘감정 표현의 다양성’에 더 많은 무게가 실립니다. 수화를 포함하되, 그 자체보다 인물 간 갈등과 화해, 고백 등 보다 드라마적인 요소가 강조되면서 스토리의 밀도가 높아집니다. 또 한국 사회의 빠르고 직접적인 소통문화가 반영되어, 인물들이 감정을 숨기기보다 드러내는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이는 원작의 ‘묵묵한 감성’과는 결이 다르지만, 오히려 현실적이라는 장점도 있습니다.


맺음말 – 서로 다른 ‘청설’이 전하는 같은 메시지

  대만판 청설은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사랑’을, 한국판 청설은 ‘말해야 비로소 닿는 진심’을 보여줍니다. 두 영화는 서로 다른 문화, 다른 표현 방식 속에서도 결국 ‘소통’이라는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원작의 조용한 여운이 그리운 이에게는 대만판이, 보다 명확한 감정선과 드라마틱한 전개를 선호하는 이에게는 한국판이 더 깊게 다가올 수 있겠죠.

  두 작품 모두 각각의 방식으로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마음이 복잡할 때, 혹은 누군가와 조용히 사랑하고 싶을 때, 어느 청설을 꺼내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