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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17',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묻다.

by 누리담터 2025.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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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개봉한 지 좀 지났지만 봉준호 감독의 2025년작《미키 17》에 대해 얘기해보려 합니다. '미키 17'은 단순한 SF 영화를 넘어 인간의 존재 이유, 정체성, 그리고 반복되는 죽음과 삶이라는 심오한 철학적 주제를 유머와 서스펜스, 그리고 정제된 시각미를 통해 풀어낸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에드워드 애슈턴의 SF 소설 『Mickey7』을 원작으로 하되, 봉 감독 특유의 장르 해체와 사회비판적 시선을 녹여내어 전혀 다른 결의 결과물을 만들어냈습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복제된 존재는 원본과 동일한 자아를 가질 수 있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됩니다.


1. 줄거리 요약

《미키17》의 세계는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빙하 행성 '닐프헤임(Niflheim)'에서 펼쳐집니다. 인류는 이곳을 식민지화하려는 대규모 탐사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며, 미키 반스는 이 임무의 일원으로 참가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의 정체는 보통의 탐사원이 아닙니다. 그는 ‘소모품(Expendable)’이라 불리는 복제 가능한 인간으로, 매우 위험한 임무에 투입되어 사망하면 복제된 육체로 다시 태어나 기억을 이어받는 존재입니다. 미키는 이미 열일곱 번째 죽음을 맞았고, '미키 17'이라는 이름으로 현재 활동 중입니다. 그러나 한 임무 중 예기치 않은 사고로 실종 상태가 되며 시스템은 그가 사망한 것으로 간주하고 '미키 18'을 활성화시킵니다. 하지만 미키 17은 기적적으로 생존한 채 기지로 복귀하게 되고, 두 개의 동일한 인격체가 동시에 존재하는 모순된 상황이 펼쳐집니다. 문제는 시스템이 이중 존재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의 존재를 은폐하면서 각자의 방식으로 사회에 적응하려 하지만, 곧 식민지 내의 정치적 음모와 시스템의 통제를 마주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미키들은 자신의 존재 이유와 ‘나’라는 개념이 무엇인지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됩니다. 과연 기억이 동일하다고 해서 동일한 자아라 할 수 있을까요?


2. 주요 등장인물 및 연기 분석

미키 반스 / 미키17 & 미키 18 - 로버트 패틴슨

영화의 중심에는 로버트 패틴슨의 1인 2역 연기가 있습니다. 패틴슨은 동일한 기억을 공유하는 두 인물을 미묘하게 다르게 표현합니다. 미키 17은 인간관계에 서툴고 외부 세계에 대해 회의적이지만, 미키 18은 보다 명확한 목표를 향해 행동하며 통제에 순응하려 합니다. 이 미세한 심리 차이를 패틴슨은 눈빛, 제스처, 목소리 톤의 변화로 세심하게 연기합니다. 복제 인간이라는 소재가 자칫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설정을 실제 존재처럼 설득시키는 데 그의 연기가 핵심적 역할을 합니다.

나타샤 배리지 – 나오미 애키

나타샤는 미키의 연인이자 식민지의 보안 책임자입니다. 그녀는 단순한 조력자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복제된 인간과 감정적으로 교류하며 인간성의 본질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는 캐릭터입니다. 나오미 래키는 냉철한 직업인의 면모와 감정적 갈등을 동시에 그려내며, 작품에 깊이를 더합니다.

티모 – 스티븐 연

티모는 지구 출신의 항공 기술자이자 미키의 유일한 친구입니다. 그는 유머와 풍자를 통해 영화의 긴장감을 이완시키는 동시에, 인간다운 따뜻함을 부여합니다. 스티븐 연 특유의 인간미 넘치는 연기가 빛나는 대목입니다.

케네스 마샬 – 마크 러팔로

닐프헤임 식민지의 독재자이자 냉혹한 현실주의자인 케네스는 복제 인간들을 도구처럼 이용하면서도, 그들 존재 자체를 위협으로 간주합니다. 마크 러팔로는 선악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복잡한 권력자의 모습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며, 극 중 가장 현실적인 인물로 관객의 도덕적 판단을 시험합니다.

율포 마샬 – 토니 콜렛

케네스의 부인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뒤에서 행사하는 율피는 강한 신념을 가진 여성입니다. 그녀는 복제 인간 문제에 있어서 철저한 계산과 냉정함을 잃지 않으며, 식민지 시스템을 지탱하는 또 다른 축으로 작동합니다.


3. 철학적 메시지와 존재론적 질문

《미키 17》의 중심에는 ‘자아는 무엇인가’라는 실존주의적 질문이 자리합니다. 동일한 기억을 가진 존재가 두 명 존재할 때, 우리는 누구를 진짜로 인정해야 하는가? 이 영화는 이 질문을 단순히 SF적 상상력에 맡기지 않고, 인물 간의 갈등과 심리 묘사를 통해 구체적인 드라마로 풀어냅니다. 나아가, 영화는 존재의 무게에 대해 질문합니다. 죽음을 반복하는 존재에게 삶의 가치는 무엇인가? 반복은 인간을 강하게 만드는가, 아니면 무력하게 만드는가? 이 영화의 인물들은 그저 살아남기 위한 존재가 아니라, 인간답게 살기 위한 고민을 합니다.


4. 연출, 미장센, 음악의 조화

봉준호 감독은 이 작품에서도 특유의 장르 융합을 선보입니다. 블랙 코미디와 SF, 드라마와 스릴러가 자연스럽게 융합되어 있으며, 절묘한 리듬으로 긴장과 이완을 오갑니다. 특히 미키 17과 미키 18의 관계를 다룰 때의 연출은 일종의 심리 스릴러처럼 진행되며, 관객을 몰입하게 만듭니다. 미장센 측면에서도 닐프헤임의 황량한 풍경과 차갑고 기계적인 식민 기지 내부는 인간성이 사라져 가는 디스토피아를 시각적으로 강하게 드러냅니다. 음악은 전반적으로 절제되어 있으나, 감정의 절정에서 강렬하게 터져 나오며 이야기의 중심축을 단단히 잡아줍니다.


5. 마무리: 복제 기술을 통해 인간성을 되묻다

《미키 17》은 단지 미래의 과학기술을 다룬 SF가 아니라, 그 기술이 인간에게 어떤 철학적, 윤리적 질문을 던지는지를 치밀하게 탐색하는 작품입니다. 복제인간이 된다는 것은 죽음을 넘어서 불사의 존재가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죽음을 반복하며 삶의 의미를 더욱 절실하게 깨닫는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이 영화는 ‘복제’라는 과학적 개념을 통해 오히려 인간 고유의 감정, 관계, 그리고 실존에 대해 더 깊은 성찰을 유도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내가 나인 이유"를 되묻게 됩니다. 한 줄로 요약하자면, 《미키17》은 “복제가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단호히 “아니다”라고 말하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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